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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 이중섭. 그의 전 일생은 천재화가 답지 않은 음울한 분위기를 지녔다. 정신이상증세와 41세의 이른 죽음. 전쟁으로 점철된 혼란스런 시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반면 그의 작품들은 아이들의 천진함과 자유로움을 담고 있다. 이중섭이 그린 '게', '물고기' 그리고 '아이들' 소재의 그림 앞에서 아이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왜일까. 게, 아이들이 이중섭 작품에 나타난 것은 제주 서귀포 시절의 반영이라는 데서 이해가능 하다. 이중섭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된다는 서귀포. 그 서귀포를 그리워하며 그렸던 작품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중섭 미술관은 9월 20일까지 특별기획전 '해후(邂逅) 57, 서귀포로 오는 이중섭 가족'을 통해 서귀포와 인연이 있는 13작품을 소개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중섭의 서귀포 생활을 이중섭 박물관 전은자 큐레이터의 고증으로 재구성했다. |
이중섭이 제주도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인한 전쟁통에서 였습니다. 1950년 1·4후퇴 때 원산에서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서울, 부산을 거쳐 1951년 1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편안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고 서귀포에 도착합니다. 같은 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여간 서귀포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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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운데 보이는 초가집이 이중섭 거주지다. ⓒ이미리 인턴기자 |
이중섭의 제주도 생활은 여건만 놓고 보자면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부인 마사꼬와 3살, 5살 되는 어린 아들 둘과 1.4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합니다. 현재 이중섭 박물관 입구 왼편으로 이중섭 거주지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보는 이들마다 그 좁디좁은 방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합니다. 이중섭이 180cm의 작지 않은 키였다는 것을 연상한다면 더욱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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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作.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
남아있는 그의 거주지만 본다면 좁고 불편할 것이라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좁은 방을 나오면 맞은 편에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 시원한 경치를 선사합니다. 아마도 그에게 좁은 방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해서 행복한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절 그의 행복은 <파란 게와 어린이>,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에 투영됩니다.
당시 이중섭의 이웃이었던 이들은 증언합니다. 그가 화내는 얼굴은 정말 보지 못했다고 말입니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다고 그를 기억합니다. 어떤 이는 부엌 담벼락에 깡통 물감들을 줄줄이 메어놓고 그림 그리는 모습도 기억합니다. 또 그가 사랑하고 즐겨 걸었다던 이중섭 거리를 바바리를 걸쳐 입고 다니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의 담벼락과 그의 거리는 여전히 남아 그를 추억하게 합니다.
▲ 아내 마사꼬, 당시 3살, 5살이던 아들 둘과 함께 이중섭이 살았던 1.4평 남짓의 방. 지금은 이중섭의 사진만이 남아 여기서 행복했었노라고 알려주고 있다. ⓒ이미리 인턴기자
그는 이웃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습니다. 동네에는 제주4.3과 한국전쟁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여럿있었습니다. 변변한 영정사진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졸지에 변을 당한 이들에게는 조그만 사진밖에 없었습니다. 이중섭이 이들을 위해 초상화 4점을 그렸습니다. 이들 중 1점을 제외한 나머지 3점은 작품으로 남아있으며 이중섭미술관 일반전시에서도 일부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웃들은 초상화에 대한 삯으로 보리쌀을 건냈다니 어려운 시기에 오갔던 서귀포의 정을 이중섭이 어찌 잊을 수 있었을까요.
이중섭은 가까운 언덕에 올라 섶섬을 즐겨 봤다고 합니다. 서귀포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인 <섶섬이 있는 풍경>, <서귀포의 환상>은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가족과 함께한 행복한 시절 즉, 환상과 파라다이스의 시절의 상징인 것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귀포를 나선 뒤에도 이 시절이 투영된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1952년에 극심한 생활고로 가족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을 사랑한 이중섭에게는 크나큰 아픔이었죠. 이후 물감이 귀해 양담배 속에 있는 은박지를 이용해 <게와 가족>, <아이들>을 그립니다. 은지화는 이중섭만의 독특한 작품이라고 알려져있죠. 이 안에 그려진 게와 물고기는 자신이 사랑한 아이들과 동격입니다. 특히 서귀포 시절 자구리 해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게를 즐겨 잡아먹었는데 이때 잡아먹는 게가 너무 많아 미안한 마음으로 게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위에 소개된 작품은 모두 이중섭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기획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이중섭 미술관 전은자 큐레이터가 덧붙이는 특별기획전 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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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미술관 전은자 큐레이터. 이중섭의 <가족> 앞에서. ⓒ이미리 인턴기자 | "이중섭 미술관 관람객들은 이중섭의 더 많은 원화를 보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그 점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특히 이중섭 미술관은 이중섭에 대한 관심으로 재차 방문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중섭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중섭의 다양한 작품을 선뵈야 했습니다. 또 8월 피서철 제주를 찾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에 이중섭 작품에 배어있는 진한 가족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것도 이번 전시 기획의 중요한 테마가 됐습니다."
전은자 큐레이터는 2007년 8월 이래로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로 역임해오고 있다. |
<제주의 소리 / 이미리 인턴기자>